<p></p><br /><br />계속해서 좀더 자세한 이야기, 하태원 국제부장과 분석해 봅니다. 키워드 부터 소개해 주시죠? <br> <br>오늘의 키워드 <'1호 열차'의 주인> 입니다. 냉랭하기만 했던 북-중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날 조짐입니다. 베일 속에 가려진 1호 열차의 주인은 김정은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. <br><br>[질문1] 중국이나 북한이 여전히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죠.어쨋든 고위급 대표단의 열차방중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어떤게 있을까요? <br> <br>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의 방중루트를 복원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. <br><br>김정일은 8번 중국을 찾았습니다. 첫번째 방중은 물론 대부분 신의주-단둥-심양-베이징 루트를 이용했습니다. 사망 7개월 전인 2011년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행적을 따라가는 길을 밟기도 했죠. 2000년 5월에 그랬던 것 처럼 남북정상회담을 한달 앞둔 시점에 급거 중국을 찾았다는 공통점이 있구요, 7년 만에 열차방중을 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. 열차 방중을 통해 북-중관계를 김정일 사망 이전으로 돌려보겠다는 의지도 담긴 것 같습니다. <br><br>[질문2] 그러고 보니 숙소도 김정일이 썼던 곳 그대로 였다죠? <br> <br>정상급 인사가 올때 영빈관인 댜오위타이를 내주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죠. 하지만 16개의 독립숙소 중 김정일이 자주 묵었던 18호각에 북한 대표단이 묵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. 시진핑도 나름의 배려를 한 듯 합니다. <br><br>[질문3] 북한 입장에서야 강경파 앞세운 트럼프 대응 버겁다 보니 중국을 협상 지렛대로 삼으려는 게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시진핑은 왜 북한 인사의 방중을 성사시켰을까요? <br><br>시진핑 시대 들어오면서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과거의 특수관계와는 사뭇 달라진 것이 사실인데요. 중국의 경고에도 잇따른 핵실험을 감행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. <br>미국의 제재압박이 심해질 수록 북한은 중국의 도움을 얻으려 했는데 시 주석은 김정은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. <br><br>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죠. 스콧 스나이더가 흥미로운 분석을 했는데. 한국과 미국에 이어 3순위로 김정은과 만나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는 지적입니다. 잇따른 대화공세 속에 김정은의 몸값이 오르긴 한 것 같습니다. <br><br>[질문4] 아직까진 철저히 비밀에 쌓여 있습니다만 곧 누가 어떤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는지, 어떤 얘기가 공개됐는지 사진이 공개되겠죠. 그동안 북중 정상들의 만남은 사진을 보면 양측의 관계가 쫙 정리된다면서요? <br> <br>2001년 9월. 장쩌민의 방북이었지만 두 사람이 얼싸 안은 모습에서 북-중관계의 훈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. 하지만 2011년 5월 후진타오와의 악수는 사무적인 느낌이 듭니다. 시진핑 시대에 들어와서 북한의 특사는 사실상 홀대를 받았습니다. 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었던 최룡해는 군복을 벗은 뒤에야 시주석을 만날 수 있었죠. 2015년 9월 천안문 망루에서 중국군열병식을 볼때도 최룡해의 자리는 말석이었습니다. <br> <br>하태원 국제부장이었습니다. <br>